일시: 2020. 8. 29. 15:00~16:30 Zoom 온라인
진행: 유혜현(당신의 삶을 묻다 대표, 위즈덤 2.0 코리아 코어리더, gPause 대표운영자)
연사: 가연숙(프리랜서 칼럼리스트, 달라이라마 기록자)
기록: 강민지(위즈덤 2.0 코리아 커뮤니티 코디네이터)
(유혜현) 지퍼즈를 소개합니다. 지퍼즈는 구글의 107번째 엔지니어 차드 멩 탄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큰 부자가 된 차드 멩 탄은 세계 평화가 꿈이었고, 어떤 일을 할까 생각하다가, 구글에서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는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구글러들이 만든 명상 모임이 지퍼즈(gPause)인데, 한국에 구글캠퍼스가 생길 때 유정은 마보 대표님이 모두(창업가)를 위한 명상 모임으로 지퍼즈를 (2015년 7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제(=유혜현)가 운영매니저를 맡고 있습니다. 나만의 성공이 아니라 우리의 성공을 이야기하는 사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고, 여러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시작 명상을 합니다.(명상)
10년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의 사진을 촬영하고 말씀을 기록한 가연숙 님이 이달의 호스트입니다. 연숙 님이 보고 들은 달라이라마 님의 이야기를 듣고자 초청하였습니다.
연숙 님은 2020년 3월 3일을 기해 한국에서 9살 소녀의 엄마이자 프리랜서 칼럼니스트이자 중소기업의 과장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꽃처럼 살다가 바람처럼 가고 싶다고 말하는 연숙 님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가연숙) 우선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위즈덤 2.0 코리아와 유혜현 님에게 감사하고,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다. 제가 자란 환경과 인연이 이끄는 대로 가다보니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서 10년을 지냈다. 이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저의 경험 내에서 답해드릴 부분이 있다면 모두에게 유익한 시간이 될 듯하다.
다람살라에 도착하면 해발 1,700미터 높이의 산, 북인도 쪽에 있다. 델리에서 1시간 40분 비행기, 심야버스로 11시간을 달려서 도착한다. 도착하면 쫄라캉이라는 달라이라마가 계시는 사원으로 간다. 다람살라의 첫 일정은 이곳에서 시작한다. 템플에 도착했을 때 보이는 전경(사진)이다. 건물들이 앞에 있고, 뒤편에 산줄기가 있다. 히말라야의 꼬랑지라고 한다. 히말라야의 정기가 남아 있는 곳이다. 이 산을 보려고 많이들 오신다. 인도의 여름은 굉장히 습하고 덥다. 남쪽이나 중부의 분들이 북으로 휴양을 온다. 역사상 다람살라는 영국 점령기 당시에 인도에서 잘 알려진 영국 군인들의 휴양지였다. 휴양지로 군인들이 살다가 지진이 나서 폐허가 되었다가, 그 당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영국 문화라고 한다면, 교회가 하나 남아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성탄 예배도 하고, 저는 불자이지만 그 예배를 매년 참석했다. 굉장히 순박하다. 찬송가를 부르면서 템버린을 치고, 북인도의 영국 기독교식 문화가 있다. 대부분은 말 그대로 인도의 힌두신앙, 카시미르 쪽의 무슬림 신앙, 달라이라마 성하가 와서 생긴 티벳불교가 어우러져 있다. 통칭으로 멕간, 멕끌로우라고 부른다. 다람살라로 통칭한다.
(사진: 제가 카메라를 들고 있다) 이때가 인도에 도착해서 달라이라마의 생신날, 티벳 전통의상인 춥빠를 입었다. 전통 한복 같은 것인데, 치마가 길다. 저는 일의 성격상 카메라를 들고 뛰어야 되는 순간이 발생하는데, 많이 힘들었고, 그날 비가 왔다. 티베트 양력으로 해서 7월 6일이 생일이다. 이때가 몬순, 장마인데, 국지성 호우처럼 오다가 쨍하고 갠다. 저는 이 옷을 입고 카메라를 메고, 그날 밤에 고열이 나서 병원 응급실에서 약을 먹고 다음 날 끙끙 앓고 회복한 기억이 있다.
(사진) 러시아의 불자들이 많음에 사람들이 놀란다. 지금 14대 달라이라마인데, 5대 달라이라마부터 러시아와 인연이 이어진다. 그때부터 티벳불교와 교류가 있고, 아직 이어진다. 러시아 불자분들이 달라이라마에게 이런 간청을 드렸다. 15대 달라이라마는 러시아에서 환생하게 해주십시오라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기념으로 러시아 기자와 달라이라마 대표 엔지니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 달라이라마의 법회를 다람살라에서 시작해서 동행해서 따라간 여정의 에피소드다. 그때 비가 굉장히 많이 내렸고, 산사태로 도로가 유실되었다. 달라이라마는 지스파에서 법회가 잡혔는데, 어렵게 모셔서 기다리고 있는데, 산사태로 도로가 막혔으니 육로로 가는 일정인데, 거의 우리 일정 루트보다 하루 전날, 전전날부터 인도 군인들이 동원되어서 막힌 도로를 뚫고, 길을 만들었다. 인부들이 도로를 치우고 간다.
(사진) 마을에서 반겨주는 모습이다. 달라이라마가 앞에 가고, 저는 뒤에서 따라 가는데, 다람살라에서 온 사람들을 환영하는 모습이다. 여인의 손에 흰색 스카프가 카따이다. 고원지대라 꽃이 없어서, 실크 스카프에 티벳 불교의 8가지 길상(상서로운) 무늬가 있고, 축하나 환영을 할 때, 희로애락에 꽃 대신 올리는 상징물이다. 뒤에는 도로 정비를 하느라 쓰인 기계가 보인다.
(사진) 제 차 앞으로 지프차들이 가는 길이 보인다. 3박 4일 걸려서 달라이라마가 머무는 숙소 근처에 우리가 숙소를 잡고, 숙소 잡기가 어려운데, 행정부에서 잡아준다. 함께 동행한 코스다.
(사진) 2010년에 보드가야(인도의 지명)에 간다. 저에게는 처음 참석한 신년법회다. 이곳 광장에서 12월말, 1월초가 되면, 뮌람이라는 신년 법회가 열린다. 미국의 불자들이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은발의 머리카락 가진 분이 리처드기어다. 미국어로 번역된 반야심경을 같이 독송한다.
(사진) 그때 당시 제가 카메라 장비가 그렇게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거대한 법회를 촬영하려고 하다보니 실험적인 부분이 많았다. 이런 부분을 앞으로 해야 하는가 할 정도로 상항이 열악했다. 이런 기록을 남기는 상황이라면, 단순히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안전과 건강도 보살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인도뿐 아니라 전 세계의 분들이 온다. 태국에서 보드가야로 오는 직항편이 생길 정도고, 델리에서 보드가야로 가는 교통편이 평소 값의 8~10배까지 뛸 정도로, 인도 관광청에서도 주목하는 국제적인 법회다.
(사진) 제가 달라이라마 스님에 관한, 티벳불교에 관한 전문 영역에서, 티벳망명정부의 현실을 다가갔던 것이, 수립 50주년 행사에 달라이라마 초청을 받게 되면서부터다. 2010년 법회 중에 달라이라마와 관련된 귀빈(VIP)들과의 만남이 있었고, 저의 할 일과 책임을 소개받았다. 달라이라마가 이 법회가 끝나고, 인도 남부에 있는 벨라쿠페라고 티벳의 3대 사원인 대붕, 간덴, 세라가 재건된 곳이 있는데, 50주년 행사가 유럽연합 의원들을 모시고 행사가 있으니, 이걸 취재하러 가자고 제안을 했다. 제가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계기다.
(사진) 달라이라마는 항상 법회에 나오는 중간 과정 동안, 망명정부에 주거하는 티벳 사람들과 매우 가까운 친밀감을 표현한다. 그 중에서 달라이라마의 여동생분이 설립한 학교의 교복을 입은 아이와 손을 잡고 있다. 이곳에서 공연이 있었는데, 보고 나가는 길에 손을 꼭 잡아준다. 취재진들이 몰린다. 학교에서도 모범생이고 똘똘한 아이라고 한다. 아이에게 가깝게 귀 기울이면서 무슨 말을 하는가 듣는 표정이 저는 참 좋았다. 달라이라마가 어떤 분인지, 사진 한 장으로 느껴진다.
(사진) 제가 티벳망명정부 외교부에서 재직하던 남편과 그곳에서 결혼을 했다. 티벳에는 3가지 지방이 있다. 라싸는 달라이라마가 머무는 포탈라궁이 있는 곳, 암도라고 중국쪽에 치우친 쪽, 캄이라고 해서 무사 기질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남편은 캄 출신이다. 집안의 대부분 친인척들이 티벳망명정부 부서와 연관된 곳에서 일한다.
(사진) 시어머니다. 제가 임신을 하고, 자주 제가 사는 집에서 2시간반 정도 거리에 있는데, 자주 다람살라에 오셔서 신경써주셨다.
(사진) 매년 9~11월 사이에 한국인 법회가 다람살라에서 열린다. 우리라나의 종교, 문화, 예술계분들이 한국인 법회 기간 동안 다람살라에 방문해서 달라이라마와 가까운 인연을 맺어왔다. 그럴 때 제가 촬영하고 기록을 남겼다.
(사진) 법회가 끝나고 비가 오는데, 할아버지(티벳어로 뽀뽈라)가 본인이 앉았던 의자를 모자 대신 머리에 쓰고, 우산을 들고 지팡이를 짚고 가신다. 다람살라에 사는 주민이다보니까, 제가 사진을 찍어도 반갑게 인사해주신다.
(사진) 이때도 달라이라마 스님의 법문을 앞두고 장마가 왔다. 법회라기보다는 외부일정으로 바깥으로 나가는 일정이었던 것 같다. 시큐리티 선이 쳐져 있다. 사람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 달라이라마 스님이 나가시면서 카메라를 향해 안녕해주신다.
(사진) 2010년도가 티벳망명정부의 변혁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달라이라마가 티벳의 정치제도에서, 나는 종교적인 부분에서만 자리에 있고 정치적인 부분은 온전히 은퇴하겠다고 선언한다. 과연 티벳 망명정부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주목 받던 시기다. 그 행사를 취재하는 기자들이다.
(사진) 티벳 할머니, 티벳 1세대이다. 망명정부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 소중한 분이다. 1959년에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했을 때, 소문이 난다. 달라이라마를 따라가자. 티벳 곳곳의 분들이 자기 마을 주민들을 챙겨서 떠나오기 시작한다. 네팔을 경유하고, 길목에서 태어나는 아이들도 많고, 역사의 살아 있는 증인이다. 연로하셨음에도 티벳에 관한 어떤 문제로 모이면 빠짐없이 나오는 분이다.
(사진) 티벳의 분신 사태가 있었을 때, 150여 명이 티벳의 자유를 구호로 외치면서, 티벳 본토의 상황을 알리는 방법이 분신 뿐이라서, 여러 가지 음모설도 야기되었지만, 같은 승려의 분신을 지지하는 어느 승려분의 사진이다. 해결할 수 없는 시대적 환경을 같은 승려로서, 불법을 공부하는 도반으로서, 자신을 불태우는 심정을 대신할 방법이 길에 나와서 사람들과 연합해 티벳의 자유와 자치권 회복을 연대했던 행동(집회)이다. 저도 이런 곳에 참여해서 기록을 남겼다.
(사진) 법회가 열리면 항상, 달라이라마는 법회 마지막에 단체사진을 찍는 시간을 갖는다. 다양한 국가에서 오니까 정신이 없다. 이 사진을 고른 이유는 달라이라마의 우측에 있는 물리학자 장박사님이 마인드&라이프 쪽으로 생명과 과학연구소로 지난 30년간 심혈을 기울여 제안한 연구소가 있는데, 이쪽과 연계된 활동이 한국 사람의 역할이 미약한데, 이 일로 달라이라마와 만난 인연이 있는 분이다. 저도 사진 속에 앉아서 웃고 있다.
(사진) 행사 때 리처드 기어가 다녀갔는데, 지나가시는 걸 순간포착했다. 리처드 기어의 스승이 네팔에 계시는데, 입적 소식을 미국에서 들었다. 네팔에 가서 애도를 표하고 다람살라에 들러서 법회가 있다고 하니까 눈에 잘 안 띄는 곳에서 듣고 나가다가 포착이 되었다.
(사진) 제가 임신을 해서 31주차에 다람살라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아이의 출산을 준비하기 위해서, 다람살라의 공항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아이를 낳고 다시 다람살라로 온다. 아이가 1 이라고 손으로 표시한 것이 1살 생일파티다. 한국인 식당에 가서 돌솥밥에 밥을 먹는다. 돌잔치에 자기가 뭘 집었는지 물어보는데, 제가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신경을 썼을 텐데, 준비가 미약했다. 이때 와주셨던 분들을 보면 미국에서 제프리 홉킨스 센터에서 결핵 연구를 하고 인도에서 결핵 문제를 위해 일하는 분, 망명정부 임원분들 등이다.
(사진) 망명정부의 베이비센터에 다닌다. 우리나라와 똑같은 것이 있다. 걸음마 걷기 전에 타는 보행기가 있고, 여기 앉은 아이가 딸이다.
(사진) 여기는 달라이라마 성하가 법회를 주관하시는 메인 템플이다. 꼬라라고 하는 탑돌이를 한다. 그때 친구가 한복을 보내줘서 아이가 입었다.
(사진) 달라이라마에게 딸아이가 티벳 이름을 받는다. 뗀진 빼마. 달라이라마에게 이름을 받는 모습이다.
(사진) 이 방의 모습은 다람살라에 계시는 청전스님 댁이다. 식사를 하는데, 아이가 졸려서 낮잠을 기도방에서 자고 있다.
(사진) 다시 또 한국에 가게 된다. 아이가 워낙 인도에서 생활한 내공이 생겼는지 본인의 우유병을 직접 들고 있다.
(사진) 한국에 도착했다.
(사진) 이제 동생들에게 보행기를 물려주고, 좀 더 언니로 베이비룸을 다니고 있다. 망명 정부 안에 있는 베이비룸이다.
(사진) 엄마가 사진을 찍으니까, 딸로 흉내를 내더라. 장난감 카메라를 들고 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순수한 감성으로 지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사진) 비틀즈 아쉬람이라고 알려진 곳이다. 비틀즈 멤버들이 인도에 요가를 배우러 왔을 때 만났던 요가 스승이 있던 아쉬람이다. 딸과 함께 갔다. 워낙 유럽의 아티스트와 건축가들이 남긴 멋진 예술작품들이 있다. 담장에 숨은 풀숲길이 있어서, 요기에게 안내를 받아서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서 본 벽화다. 지금은 바뀌었다고 한다. 몰래 아티스트들이 와서 벽화를 그린다.
(사진) 달라이라마가 항상 아힘사(비폭력)를 강조한다. 비폭력이라는 부분을 우리는 사랑과 자비로 번역한다. 옆에 있는 분은 간디의 가까운 친척이다. 이때 행사가 있었을 때, 와서 주목을 받았다. 인도는 성격상 중요 직책에서 남편이 물러나면, 대신할 사람이 생기기 전까지 아내가 대신하는 시스템이 있다. 한 사람뿐 아니라 집안까지 존중하고 동일시하는 정치문화가 있다.
(사진) 이분은 우리나라 BTN에도 이분이 나온 영화가 있었는데, 영화 싯타르타에서 붓다 역을 한 사람이다. 남인도에서 법문이 있는데, 4년 동안 지속이 된다. 그때 영화 홍보차 오셨을 때, 사인을 손에 해달라고 손을 내민다. 난리가 났다. 싯다르타라는 영화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태국 등 불교 국가로 불교 채널에서 방송이 되고 있는 걸로 안다.
(사진) 법회 참석할 때, 저는 카메라 가방을 메고, 옆에 꿀리라고 해서 짐을 날라주는 분에게 돈을 드리고 짐을 맡긴다. 얼마를 드리겠다고 계약을 하고 짐을 날라준다.
(사진) 라다크에서 법회가 있었을 때의 사진인데, 다른 사진에 비해서 퀄리티가 좋은 이유가, 달력으로 제공해달라는 부탁이 있어서 화질이 좋다. 법회 참석하는 승려분의 가방을 보자. 얼마나 먼 길을 지팡이를 짚고 왔을까. 발걸음이 힘차다. 달라이라마의 법회를 가기 위해서, 노란색 긴 헝겊에 쌓인 것은 분명 경전이나 논서다. 법회장으로 향하는 뒷모습이다.
(사진) 라다크의 전통의상을 입은 남녀들이다. 많은 파라솔들이 보인다. 워낙 햇빛이 강하다. 멀리 노란색 지붕이 보이는 곳이 한쪽은 달라이라마의 숙소이고, 한쪽은 법회를 하는 곳이다. 바깥에 많은 군중들이 운집했다.
(사진) 달라이라마에게 가피(축복)를 받기 위해서 사원이든, 본인이 머무는 공간에 모실 불상을 가지고 나온다. 법회가 거의 마무리 될 때 보여지는 풍경이다.
(사진) 칼라차크라 법회에서는 샌드(Sand) 만다라를 조성한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세계적인 평화를 기원한다. 만다라에 들어가기 직전에 첫 모래가루를 뿌려 넣는 모습이다. 이것으로 의식이 시작된다.
(사진) 하루하루 지날수록 만다라가 완성된다. 주변에서는 기도를 한다.
(사진) 티벳 불교와 연관된 춤과 의식이다.
(사진) 티벳불교에는 신탁승이라는 흥미로운 제도가 있다. 망명하기로 결정을 하고, 언제 떠날지를 고심하면서, 신탁승에서 기일을 묻는다. 언제 떠나야 인도에 무사하게 도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티벳에 여러 신탁승이 있는데, 가장 저명한 꾸뗀 라라고 불리는 스님이다. 한국에도 여러 번 다녀가셨다.
(사진) 각종 의식이 펼쳐진다. 달라이라마가 만다라 위에 올라가서 의식을 한다. 가끔 법문 중에 말씀하던 부분이 앞으로의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꿈에 이런 모습이 자주 나왔다고, 만다라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본다고 한다. 의식에서 힌트를 얻는 것 같기도 하다.
(사진) 법문 중의 달라이라마의 모습이다.
(사진) 쉽게 보기 어려운 평소의 달라이라마의 모습이다.
(사진) 다람살라의 아침 모습, 일출 풍경이다.(정말 멋지네요^^)
(사진) 석양 풍경이다.
(사진) 법회가 있으면 사람들이 줄을 선다.
(사진) 아침부터 대중들이 공양할 빵을 운력하는 비구니 스님들이다.
(사진,사진) 가피를 받을 물건들. 가피는 블레싱(Blessing)이다. 달라이라마의 손길을 닿은 것만으로도 신앙심에서 힘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염주나 불상 등을 가져온다. 말려 있는 빨간 족자는 탱화(티벳어로는 탕카)다. 집에 가져와서, 법회장에서 느꼈던 마음가짐을 리마인드하려고 활용한다.
(사진) 태국에서 전 미스태국 출신분들과 연예인 우디의 기획사 분들이 오셨다. 공항 안내방송에 출연하기도 하고, 매우 적극적으로 티벳불자들과 함께 참석하는 분이다.
(사진) 역시 비가 오는 사진이다. 밖에서 달라이라마를 기다리는 대중들이다.
(사진) 취재 열기가 대단하다. 대중 앞에 달라이라마가 선 모습이다.
(사진) 제가 워낙 오래 있다 보니까, 제가 사진을 찍으면 티벳 분들이 봐주신다.
(사진) 법석에 올라서 대중에게 인사를 나누는 달라이라마의 모습이다. 연세가 있으셔서, 오전 9시에 시작해서 11시 정도에 끝나는 1차례 법회만 한다. 85세이시다. 예전에는 오전과 오후에 법회를 했다.
(사진) 대중들이 주는 선물도 받고, 옆에 경찰들이 보호를 한다.
(사진) 한 스님이 손끝이라도 달라이라마와 닿아볼까 하고 손을 뻗는데, 특수경찰에게 제지를 당했다.
(사진) 법회 시간에 대중공양으로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담긴 밀크티나 버터차를 나눠준다.
(사진) 빵도 같이 나온다. 그리고 필수품이 FM라디오다. 전세계 다양한 언어로 번역이 된다. 개인 지참물이다.
(사진) 태국분들이 다람살라에 태국 절을 지으면서, 다른 나라에서 올 때 같이 참여한다. 인사를 이마와 이마를 맞대면서 인사를 한다. 20년 가까이 한국 법회를 주관하는 석천사의 진옥스님이다.
(사진) 가까이서 찍은 달라이라마의 모습이다.
(사진) 법회 때 달라이라마 스님의 옆 좌석으로 높으신 분들이 앉아 있다. 법회에 주최하거나 연관된 분들이 있다.
(사진) 달라이라마의 웃으시는 모습이다.
(사진) 법회에 갈 때 매우 간소하다. 박스 종이를 들고, 기온 차이가 있을지 몰라서 숄을 하나 챙기고, 바랑에는 버터차를 위한 컵이나, 교재 등이 있겠다.
(사진) 아침에 보면 인도 출가승려들이 탁발 공양을 줄 서서 한다.
(사진) 다람살라 법회장의 공양간이다. 제가 유일한 장비를 유일하게 풀고 차 한 잔 얻어 마시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할아버지가 만드시는 밀크티는 공양간에서 일하는 분들만을 위한 밀크티라서 좀 더 진하다. 제가 가면 불을 켜서 따뜻하게 주신다.
(사진) 인도 가지다. 공양간에서 다같이 다듬고 있다.
(사진)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 나머지 공부를 하는 스님들. 법회장의 풍경이다.
(사진) 어디에서 오셨을까. 다람살라에 계시는 분은 아니다. 굉장히 유랑한 분 같다.
(사진) 링 린포체다. 한국에 와서 화제가 되었다
(사진) 간덴 트뤼빠 린포체다.
(사진) 달라이라마의 서양인 주치의다.
(사진) 제춘 빼마 라는 티벳 칠드런 빌리지의 설립자이고, 달라이라마의 여동생이다. 영화에서 달라이라마의 어머니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사진) (엄청 큰) 국을 끓이는 그릇이다.
(사진) 스님들이 대중에게 빵을 나눠준다.
(사진) 향을 사르는 모습이다. 법회가 열렸을 때, 법회와 주관할 때, 달라이라마의 앞길을 이렇게 열어준다.
(사진) 먼 곳에서 오신 분들이다. 티벳 본토에서 오신 분들은 사진 촬영에 민감하다.
(사진) 남은 방울 하나까지 짜이를 마시는 할아버지다.
(사진) 열심히 촬영해주시는 기사님이다. 챙겨주는 부분들이 많다. 한국에서 오시는 미디어 분이다.
(사진) 여러 나라에서 오시지만, 어떻게 하면 달라이라마를 가까이서 볼까가 경쟁이다. 저 책에 결국 사인을 받았다.
(사진) 법회장의 분위기다.
(사진) 이스라엘에서 온 분들이다. 굉장히 자유로워 보인다. 법회용 좌석이 아니지만 2층에 공간이 있어서 앉아 있다.
(사진) 신탁으로 유명한 분이다. 제춘 빼마 라.
(사진) 법당에 제공될 밀크티를 주전자에 담는 공양간 풍경이다.
(사진) 이제는 공양간에 아무도 못 들어간다. 혹시라도 누가 독극물을 풀까봐, 매우 삼엄하게 통제한다.
(사진) 한국에서 오신 촬영기사분과 제가 나온 사진이다.
(사진) 개인 컵을 가져와서 법회 중에 나눠주는 짜이를 마신다.
(사진) 아이와 함께 오신 엄마다. 블레싱을 받아간다.
(사진) 네팔에서 오신 분과 만난다. 이제 7시가 넘은 시각인데, 새벽에 3시반 정도에 일어나신다. 공식 일정을 거의 7시부터 시작한다.
(사진) 네팔에서 공수한 매우 귀한 만다라다. 제작기간이 거의 2년이 걸린 탱화에 블레싱하기 위해 펴고 있다.
(사진) 달라이라마가 빨간 양말을 신고 있다. 5~6년 전에 매우 많은 양의 양말을 공수해서 나눠가졌다. 한국에서 빨간양말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누가 특별주문을 하신 것 같다.
(사진) 달라이라마의 손이다.
(사진) 법회장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달리아라마 방한추진위원회의 위원장인 금강스님이 계신다.
(사진) 가피라고 해서, 대중들이 올린 물건에 숨결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원래 촬영이 허락이 안 되는 구역이다.
(사진) 사람들이 달라이라마를 취재하려고 부른다.
(사진) 열심히 공부하는 한국 스님들이 많이 계신다.
(사진) 아들과 함께 온 한국 여자분이다.
(사진) 오랫동안 한국인 법회를 통역하며 현지에서 공부도 하고 있는 통역가 양지애 님이다.
(사진) 진옥스님과 상좌 범국스님으로, 상좌 스님은 저와 동국대 대학원 동기셨는데 위암 투병을 하시다 입적을 하셨다.
(사진) 남인도에서 한국 선방을 운영하는 열성 학인이신 강봉스님이시다.
(사진) 태국, 대만분들 같은데, 굉장히 신심이 두터운 모습이다.
(사진) 현지에서 공부하고 계신 (한국) 스님이다.
(사진) 법회가 끝나고 단체 촬영을 할 때 난리가 난다. 비서진들이 인원통제를 하고, 몇 만명이 모이는 수준이라서, 우리가 보는 카메라 뒤편이 모습이 이렇다.
(사진) 얼마 전 작고하신 아마아데 님이다. 중국에서 넘어와서 티벳 상황을 알리는 일들을 하셨다. 92세이다. 호주에서 망명을 받아주겠다고 했지만, 다람살라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사진) 달라이라마의 모습이다. 제가 다람살라에 왜 있었는지 상기시켜주는 사진이다.
(유혜현) 여러분 혹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알려달라. 사진과 에피소드를 많이 얘기해주셨는데, 다람살라로 떠나신 계기가 궁금하다. 타지에서 10년간 생활하시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머물렀던 이유가 궁금하다.
(가연숙) 다람살라로 갈 지 6개월을 고민했다. 가게 된 이유는 우선 대학원에서 응용불교 석사를 공부하고, 불교언론사에서 문화담당 기자를 하고, 그 전에도 저는 자기 연민에 관한 창작활동을 해왔다. 어떻게 해소했나 보면 영화를 만드는 쪽으로 참여했다. 상업영화의 연출과 미술을 담당했는데,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영상으로 표현하면서 그 해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그 해답을 찾을 수 없었는데, 전공과 관련된 인연으로 신문사로 갔는데, 한국에서 저에 대한 느낌은 가연숙이라는 이름이 부모님이 지어주셨고, 사람들이 불러줘도 어색했다. 내가 이름에 답하고 행동하고, 내가 가연숙이라고 하지만, 이 이름이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근원적인 것, 종교적으로 심취는 안 했지만, 설치미술, 백남준 교수님이 계실 때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대학로의 공연을 촬영하며 돈을 모으기도 했다.
저는 예술을 접목하며 살았고, 한국에서 자기 연민이라는 것이 한국에서 풀리지가 않았다. 나이 서른에 고민이 계속 되었고, 출가를 생각하다가, 비구니 스님을 만나서, 영국의 행사에 다녀올 시점이었는데, 스님이 저를 상좌로 삼고 싶다고 하셨다. 영국에 다녀와서 미얀마에 수행을 하러 가자고 했다. 그런데 영국에 다녀오며 마음이 변했다. 재가자로 할 수 있는 일을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인도에 갔고, 한국인 법회를 주관한 진옥스님을 만나서 다람살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2009년 5월에 먼저 가게 되면서,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토해내는 병, 말라리아일 수도 있고, 몇 걸음만 걸어도 해머로 머리를 찍는 것 같은 아픔이 있었고, 한국으로 긴급히 돌아오고 그때 치료를 받으면서 든 생각이 다시 다람살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람살라에서 제가 본 것은 세계사에 대한 재해석이었다. 제가 교육받았더 부분의 오류들 제가 배운 것이 완벽하지 않았던 것이다. 1950년대는 격변의 시기였고, 미국의 도움으로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성장을 했는데, 티벳은 그 당시 매우 위태로웠다. 그래서 1959년에 인도로 달라이라마가 망명을 했는데, 세계는 왜 티벳을 이렇게 방관하고, 한국에는 원조를 했을까. 전체적인 시스템에 거부하려는 느낌도 들었다. 모두가 한 곳을 볼 때, 저는 다른 측면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다람살라에서 할 일이 있다면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짐을 꾸렸다. 이게 6개월이 걸렸다. 다람살라에 물들어서, 제 마음의 고향에 온 것처럼 느낀 곳이었다. 저를 많이 변화시켜주었다. 인성적으로나 마음씀으로나, 오히려 배운 것이 많은 곳이 다람살라다.
Q) 10년을 타지에서 살며 깨달은 점은 무엇인가요?
A) 주변 분들이 그런 말을 한다. 저의 미션이었다고 한다. 저는 업무적으로 달라이라마 가까이 갈 수 있었지만, 딸의 이름을 받으려고 가는데 공양금을 올려야 하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어봤는데, 남편이 당신이 이미 다람살라를 위해서 살고 있으니 충분하다고 했다. 진심이었고, 한국에서보다 부지런히 살았고, 한국인이지만 다람살라 안에서는 제가 티벳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10년이 지났다.
Q)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A)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하신다. 힘들다, 힘들다. 사실 힘들다. 삶은 힘들다. 괴롭고 고통스럽다. 그런데 그런 부분들이 사실은 뭐랄까, 본인이 힘들다는 늪에 빠져서 그 늪을 조성하는 점을 아셨으면 좋겠다. 벌떡 일어나서, 내가 정신차려야지 해야한다. 힘들다고 하면 그 힘들다는 감정에 몰입되어서 놓치는 것들이 많아진다. 본인의 정체성과 가치를 잃는다. 내가 휴식이 필요할 정도로 힘들다면 말 그대로 쉬면 된다. 힘들어서 쉬어야 돼. 힘들어, 죽겠다고 혼자 끙끙대면 더 힘들어진다. 차라리 말을 하자. 모든 문제의 과정이나 출발점이 대화의 부재로 일어나는 오해가 많다. 상대방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내가 잘못 해석하는 부분이 많다. 제가 우려하는 점도 문자 메시지에 감정이 들어 있지 않아서 곡해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굉장히 조심스럽다. 시대가, 우리나라가 그런 경우가 많은 듯하다.
홍콩에서 열린 사캬디타 국제대회에서 룸메 분이 먼저 귀국하시고 홀로 홍콩대 앞 쌀국수 집에서 끼니를 때울 때, 캘리포니아에서 온 비즈니스맨이 옆에 앉았다. 그분은 비즈니스 관계로 오셨고, 저는 사진을 찍기 위해 왔다. 얘기를 하다보니, 캘리포니아에 히피문화가 강한 곳인데, 달라이라마가 당신의 행복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다. 달라이라마가 법문을 하시고 길을 보여주시지만, 그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 법문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지만, 그게 내 삶을 통째로 걸고 할 수 있는가, 혹은 나는 달라이라마의 말을 듣고 나의 삶에 적용하고, 사람들과 연대하고, 주변부터 달라지게 할 수 있는데 두 번째가 더 유니크하다고 본다. 달라이라마도 강조한 말이다. 이게 내 마음과 머리로 말씀의 요지가 이거구나, 제 것으로 체화시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위즈덤 2.0의 앞으로의 행보도 그런 쪽이라고 본다. 실천과 액션이다. 성인들의 말씀은 선지식의 말씀을 또 인용하는데 진리라는 것은 ‘모든 변화하는 것들의 뼈대’와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뼈대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불교의 뼈대는 4성제로 시작한다. 인생은 괴롭다, 해결할 길은 8가지 바른 길에 있다. 사실 나는 괴롭다, 우울하다, 누구보다 불행하다고 했는데, 그것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해결할 방법을 가르치는 한 분이 달라이라마이고, 저는 다람살라에서 지난 10년을 지냈다.
Q)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반복하는 습관이 있으신지?
A) 게쉬 랑리탕바 스님의 글이 있다. 불교와 상관 없이 비종교인을 포함해서, 해외 법문을 가시면, 좀 여유로운 시간을 내서 설명해주시는 수심8훈(마음을 다스리는 8가지 게송)이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여덟가지 게송 by 게쉬 랑리탕바
1. 생명 가진 모든 존재들,
여의주(소원을 이루어주는 보석)보다 귀하지만
무한한 시간 동안 괴로움에 물들었으니
이 안타까운 생명들의 진정한 행복 위해
완전한 깨달음 이루려는 결심으로
매 순간 변함없이 이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2.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
제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에 두고
가장 미숙한 존재로 여기며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다른 이들을 더 나은 존재로,
더 성숙한 존재로 받들게 하소서
3. 모든 행동들 속에서 마음을 온전히 살펴
온갖 거친 혐오와 괴로움, 모든 미세한 번민과 고뇌,
그리고 그 원인들이 일어나면 그 즉시 충동에 이끌린 조작심이
제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험에 빠지게 함을 알아
당당히 오직 음미하는 무조작심 속에서 휴식하게 하소서
4. 누군가 시기심과 이기심, 또는 어리석음으로
저를 욕하고 비난하며 험담을 퍼뜨리고
부당하고 차갑고 혐오스럽게 대하여도
모든 패배와 손실, 해로움은 거리낌없이 제게 주시고
모든 승리와 이익, 이로움은 미련 없이 이들에게 주소서
5. 강한 부정적 성향과 고통에 억눌려
불쾌한 성격을 가지게 된 이들을 보거나 만나게 되면
마치 찾기 어려운 귀중한 보물을 발견한 듯이,
고귀한 스승과 은혜로운 오랜 친구의 방문을 환영하듯이,
온전히 열린 가슴으로 이들을 반겨 맞이하게 하소서
6. 정성 들여 우애를 쌓으며 행복하길 기도하였던 이들이
낯빛을 바꾸어 제게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를 주거나
심지어 몸과 마음에 가혹한 학대를 가할지라도
변함없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이들이
나쁜 까르마(업)를 소멸시켜주는 고귀한 스승임을 알게 하소서
7. 시작 없는 때로부터 저의 온갖 악행에도 불구하고
한량없는 은혜 베풀어 주신 저의 모든 어머니들께
직간접으로 이익과 즐거움 다함 없이 지혜롭게 드리고
어머니들의 모든 상처와 고통은 남김없이
고요하고 은밀히 제게 주소서
8. 이익 손실, 명예 악명, 칭송 비난, 즐거움 괴로움,
이 여덟 가지 세속적 관심사의 오염에 물들지 않게 하시고
모든 것이 실체 없는 환상 임을 깨달아
장애 속에서 휴식하고 고통 속에서 산보하듯
집착 없이 모든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소서
요약하면, 첫째, 모든 생명들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라는 건 나의 진심을 모두 할애해서, 나와 다름없이 존귀한 존재로 상대를 대하는 것이다. 둘째,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만나더라도, 내 자신을 누구보다 부족하고 미숙하게 보라는 것은 갑질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셋째, 내 마음에 번뇌에 대한 조작심이 일어나면 나와 남을 해치니 조작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는 것이다. 넷째, 모든 해로움을 저에게 달라는 것은 결국 연민에 관한 이야기다. 다섯째, 열린 가슴으로 부정적인 성향의 사람들을 대하자. 여섯째 내가 도와주고 큰 기대를 걸었던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치더라도, 그를 내가 성장하도록 일깨워주는 스승(선지식)이라고 생각하자. 일곱째, 나의 안락을 모든 어머니들에게 드리고, 어머니들의 고통을 내가 받게 하소서. 여덟째, 세간 8풍(8가지 유혹과 오염) 에 물들지 않게 하고, 모든 것을 꿈과 같이 알고 자유롭게 해달라는 것이다.
불교가 어려워서 접근을 거리감을 두는 분들이 있는데, 윤리적으로 사회에서 더 연결되어서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 시처럼 쓰인 글이다. 위즈덤 2.0 코리아 10월 16~17일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한다.(끝)
일시: 2020. 8. 29. 15:00~16:30 Zoom 온라인
진행: 유혜현(당신의 삶을 묻다 대표, 위즈덤 2.0 코리아 코어리더, gPause 대표운영자)
연사: 가연숙(프리랜서 칼럼리스트, 달라이라마 기록자)
기록: 강민지(위즈덤 2.0 코리아 커뮤니티 코디네이터)
(유혜현) 지퍼즈를 소개합니다. 지퍼즈는 구글의 107번째 엔지니어 차드 멩 탄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큰 부자가 된 차드 멩 탄은 세계 평화가 꿈이었고, 어떤 일을 할까 생각하다가, 구글에서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는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구글러들이 만든 명상 모임이 지퍼즈(gPause)인데, 한국에 구글캠퍼스가 생길 때 유정은 마보 대표님이 모두(창업가)를 위한 명상 모임으로 지퍼즈를 (2015년 7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제(=유혜현)가 운영매니저를 맡고 있습니다. 나만의 성공이 아니라 우리의 성공을 이야기하는 사람,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고, 여러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시작 명상을 합니다.(명상)
10년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의 사진을 촬영하고 말씀을 기록한 가연숙 님이 이달의 호스트입니다. 연숙 님이 보고 들은 달라이라마 님의 이야기를 듣고자 초청하였습니다.
연숙 님은 2020년 3월 3일을 기해 한국에서 9살 소녀의 엄마이자 프리랜서 칼럼니스트이자 중소기업의 과장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꽃처럼 살다가 바람처럼 가고 싶다고 말하는 연숙 님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가연숙) 우선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위즈덤 2.0 코리아와 유혜현 님에게 감사하고,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다. 제가 자란 환경과 인연이 이끄는 대로 가다보니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서 10년을 지냈다. 이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저의 경험 내에서 답해드릴 부분이 있다면 모두에게 유익한 시간이 될 듯하다.
다람살라에 도착하면 해발 1,700미터 높이의 산, 북인도 쪽에 있다. 델리에서 1시간 40분 비행기, 심야버스로 11시간을 달려서 도착한다. 도착하면 쫄라캉이라는 달라이라마가 계시는 사원으로 간다. 다람살라의 첫 일정은 이곳에서 시작한다. 템플에 도착했을 때 보이는 전경(사진)이다. 건물들이 앞에 있고, 뒤편에 산줄기가 있다. 히말라야의 꼬랑지라고 한다. 히말라야의 정기가 남아 있는 곳이다. 이 산을 보려고 많이들 오신다. 인도의 여름은 굉장히 습하고 덥다. 남쪽이나 중부의 분들이 북으로 휴양을 온다. 역사상 다람살라는 영국 점령기 당시에 인도에서 잘 알려진 영국 군인들의 휴양지였다. 휴양지로 군인들이 살다가 지진이 나서 폐허가 되었다가, 그 당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영국 문화라고 한다면, 교회가 하나 남아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성탄 예배도 하고, 저는 불자이지만 그 예배를 매년 참석했다. 굉장히 순박하다. 찬송가를 부르면서 템버린을 치고, 북인도의 영국 기독교식 문화가 있다. 대부분은 말 그대로 인도의 힌두신앙, 카시미르 쪽의 무슬림 신앙, 달라이라마 성하가 와서 생긴 티벳불교가 어우러져 있다. 통칭으로 멕간, 멕끌로우라고 부른다. 다람살라로 통칭한다.
(사진: 제가 카메라를 들고 있다) 이때가 인도에 도착해서 달라이라마의 생신날, 티벳 전통의상인 춥빠를 입었다. 전통 한복 같은 것인데, 치마가 길다. 저는 일의 성격상 카메라를 들고 뛰어야 되는 순간이 발생하는데, 많이 힘들었고, 그날 비가 왔다. 티베트 양력으로 해서 7월 6일이 생일이다. 이때가 몬순, 장마인데, 국지성 호우처럼 오다가 쨍하고 갠다. 저는 이 옷을 입고 카메라를 메고, 그날 밤에 고열이 나서 병원 응급실에서 약을 먹고 다음 날 끙끙 앓고 회복한 기억이 있다.
(사진) 러시아의 불자들이 많음에 사람들이 놀란다. 지금 14대 달라이라마인데, 5대 달라이라마부터 러시아와 인연이 이어진다. 그때부터 티벳불교와 교류가 있고, 아직 이어진다. 러시아 불자분들이 달라이라마에게 이런 간청을 드렸다. 15대 달라이라마는 러시아에서 환생하게 해주십시오라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기념으로 러시아 기자와 달라이라마 대표 엔지니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 달라이라마의 법회를 다람살라에서 시작해서 동행해서 따라간 여정의 에피소드다. 그때 비가 굉장히 많이 내렸고, 산사태로 도로가 유실되었다. 달라이라마는 지스파에서 법회가 잡혔는데, 어렵게 모셔서 기다리고 있는데, 산사태로 도로가 막혔으니 육로로 가는 일정인데, 거의 우리 일정 루트보다 하루 전날, 전전날부터 인도 군인들이 동원되어서 막힌 도로를 뚫고, 길을 만들었다. 인부들이 도로를 치우고 간다.
(사진) 마을에서 반겨주는 모습이다. 달라이라마가 앞에 가고, 저는 뒤에서 따라 가는데, 다람살라에서 온 사람들을 환영하는 모습이다. 여인의 손에 흰색 스카프가 카따이다. 고원지대라 꽃이 없어서, 실크 스카프에 티벳 불교의 8가지 길상(상서로운) 무늬가 있고, 축하나 환영을 할 때, 희로애락에 꽃 대신 올리는 상징물이다. 뒤에는 도로 정비를 하느라 쓰인 기계가 보인다.
(사진) 제 차 앞으로 지프차들이 가는 길이 보인다. 3박 4일 걸려서 달라이라마가 머무는 숙소 근처에 우리가 숙소를 잡고, 숙소 잡기가 어려운데, 행정부에서 잡아준다. 함께 동행한 코스다.
(사진) 2010년에 보드가야(인도의 지명)에 간다. 저에게는 처음 참석한 신년법회다. 이곳 광장에서 12월말, 1월초가 되면, 뮌람이라는 신년 법회가 열린다. 미국의 불자들이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은발의 머리카락 가진 분이 리처드기어다. 미국어로 번역된 반야심경을 같이 독송한다.
(사진) 그때 당시 제가 카메라 장비가 그렇게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거대한 법회를 촬영하려고 하다보니 실험적인 부분이 많았다. 이런 부분을 앞으로 해야 하는가 할 정도로 상항이 열악했다. 이런 기록을 남기는 상황이라면, 단순히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저의 안전과 건강도 보살펴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인도뿐 아니라 전 세계의 분들이 온다. 태국에서 보드가야로 오는 직항편이 생길 정도고, 델리에서 보드가야로 가는 교통편이 평소 값의 8~10배까지 뛸 정도로, 인도 관광청에서도 주목하는 국제적인 법회다.
(사진) 제가 달라이라마 스님에 관한, 티벳불교에 관한 전문 영역에서, 티벳망명정부의 현실을 다가갔던 것이, 수립 50주년 행사에 달라이라마 초청을 받게 되면서부터다. 2010년 법회 중에 달라이라마와 관련된 귀빈(VIP)들과의 만남이 있었고, 저의 할 일과 책임을 소개받았다. 달라이라마가 이 법회가 끝나고, 인도 남부에 있는 벨라쿠페라고 티벳의 3대 사원인 대붕, 간덴, 세라가 재건된 곳이 있는데, 50주년 행사가 유럽연합 의원들을 모시고 행사가 있으니, 이걸 취재하러 가자고 제안을 했다. 제가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계기다.
(사진) 달라이라마는 항상 법회에 나오는 중간 과정 동안, 망명정부에 주거하는 티벳 사람들과 매우 가까운 친밀감을 표현한다. 그 중에서 달라이라마의 여동생분이 설립한 학교의 교복을 입은 아이와 손을 잡고 있다. 이곳에서 공연이 있었는데, 보고 나가는 길에 손을 꼭 잡아준다. 취재진들이 몰린다. 학교에서도 모범생이고 똘똘한 아이라고 한다. 아이에게 가깝게 귀 기울이면서 무슨 말을 하는가 듣는 표정이 저는 참 좋았다. 달라이라마가 어떤 분인지, 사진 한 장으로 느껴진다.
(사진) 제가 티벳망명정부 외교부에서 재직하던 남편과 그곳에서 결혼을 했다. 티벳에는 3가지 지방이 있다. 라싸는 달라이라마가 머무는 포탈라궁이 있는 곳, 암도라고 중국쪽에 치우친 쪽, 캄이라고 해서 무사 기질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남편은 캄 출신이다. 집안의 대부분 친인척들이 티벳망명정부 부서와 연관된 곳에서 일한다.
(사진) 시어머니다. 제가 임신을 하고, 자주 제가 사는 집에서 2시간반 정도 거리에 있는데, 자주 다람살라에 오셔서 신경써주셨다.
(사진) 매년 9~11월 사이에 한국인 법회가 다람살라에서 열린다. 우리라나의 종교, 문화, 예술계분들이 한국인 법회 기간 동안 다람살라에 방문해서 달라이라마와 가까운 인연을 맺어왔다. 그럴 때 제가 촬영하고 기록을 남겼다.
(사진) 법회가 끝나고 비가 오는데, 할아버지(티벳어로 뽀뽈라)가 본인이 앉았던 의자를 모자 대신 머리에 쓰고, 우산을 들고 지팡이를 짚고 가신다. 다람살라에 사는 주민이다보니까, 제가 사진을 찍어도 반갑게 인사해주신다.
(사진) 이때도 달라이라마 스님의 법문을 앞두고 장마가 왔다. 법회라기보다는 외부일정으로 바깥으로 나가는 일정이었던 것 같다. 시큐리티 선이 쳐져 있다. 사람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다.
(사진) 달라이라마 스님이 나가시면서 카메라를 향해 안녕해주신다.
(사진) 2010년도가 티벳망명정부의 변혁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달라이라마가 티벳의 정치제도에서, 나는 종교적인 부분에서만 자리에 있고 정치적인 부분은 온전히 은퇴하겠다고 선언한다. 과연 티벳 망명정부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주목 받던 시기다. 그 행사를 취재하는 기자들이다.
(사진) 티벳 할머니, 티벳 1세대이다. 망명정부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 소중한 분이다. 1959년에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했을 때, 소문이 난다. 달라이라마를 따라가자. 티벳 곳곳의 분들이 자기 마을 주민들을 챙겨서 떠나오기 시작한다. 네팔을 경유하고, 길목에서 태어나는 아이들도 많고, 역사의 살아 있는 증인이다. 연로하셨음에도 티벳에 관한 어떤 문제로 모이면 빠짐없이 나오는 분이다.
(사진) 티벳의 분신 사태가 있었을 때, 150여 명이 티벳의 자유를 구호로 외치면서, 티벳 본토의 상황을 알리는 방법이 분신 뿐이라서, 여러 가지 음모설도 야기되었지만, 같은 승려의 분신을 지지하는 어느 승려분의 사진이다. 해결할 수 없는 시대적 환경을 같은 승려로서, 불법을 공부하는 도반으로서, 자신을 불태우는 심정을 대신할 방법이 길에 나와서 사람들과 연합해 티벳의 자유와 자치권 회복을 연대했던 행동(집회)이다. 저도 이런 곳에 참여해서 기록을 남겼다.
(사진) 법회가 열리면 항상, 달라이라마는 법회 마지막에 단체사진을 찍는 시간을 갖는다. 다양한 국가에서 오니까 정신이 없다. 이 사진을 고른 이유는 달라이라마의 우측에 있는 물리학자 장박사님이 마인드&라이프 쪽으로 생명과 과학연구소로 지난 30년간 심혈을 기울여 제안한 연구소가 있는데, 이쪽과 연계된 활동이 한국 사람의 역할이 미약한데, 이 일로 달라이라마와 만난 인연이 있는 분이다. 저도 사진 속에 앉아서 웃고 있다.
(사진) 행사 때 리처드 기어가 다녀갔는데, 지나가시는 걸 순간포착했다. 리처드 기어의 스승이 네팔에 계시는데, 입적 소식을 미국에서 들었다. 네팔에 가서 애도를 표하고 다람살라에 들러서 법회가 있다고 하니까 눈에 잘 안 띄는 곳에서 듣고 나가다가 포착이 되었다.
(사진) 제가 임신을 해서 31주차에 다람살라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아이의 출산을 준비하기 위해서, 다람살라의 공항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아이를 낳고 다시 다람살라로 온다. 아이가 1 이라고 손으로 표시한 것이 1살 생일파티다. 한국인 식당에 가서 돌솥밥에 밥을 먹는다. 돌잔치에 자기가 뭘 집었는지 물어보는데, 제가 그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신경을 썼을 텐데, 준비가 미약했다. 이때 와주셨던 분들을 보면 미국에서 제프리 홉킨스 센터에서 결핵 연구를 하고 인도에서 결핵 문제를 위해 일하는 분, 망명정부 임원분들 등이다.
(사진) 망명정부의 베이비센터에 다닌다. 우리나라와 똑같은 것이 있다. 걸음마 걷기 전에 타는 보행기가 있고, 여기 앉은 아이가 딸이다.
(사진) 여기는 달라이라마 성하가 법회를 주관하시는 메인 템플이다. 꼬라라고 하는 탑돌이를 한다. 그때 친구가 한복을 보내줘서 아이가 입었다.
(사진) 달라이라마에게 딸아이가 티벳 이름을 받는다. 뗀진 빼마. 달라이라마에게 이름을 받는 모습이다.
(사진) 이 방의 모습은 다람살라에 계시는 청전스님 댁이다. 식사를 하는데, 아이가 졸려서 낮잠을 기도방에서 자고 있다.
(사진) 다시 또 한국에 가게 된다. 아이가 워낙 인도에서 생활한 내공이 생겼는지 본인의 우유병을 직접 들고 있다.
(사진) 한국에 도착했다.
(사진) 이제 동생들에게 보행기를 물려주고, 좀 더 언니로 베이비룸을 다니고 있다. 망명 정부 안에 있는 베이비룸이다.
(사진) 엄마가 사진을 찍으니까, 딸로 흉내를 내더라. 장난감 카메라를 들고 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순수한 감성으로 지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사진) 비틀즈 아쉬람이라고 알려진 곳이다. 비틀즈 멤버들이 인도에 요가를 배우러 왔을 때 만났던 요가 스승이 있던 아쉬람이다. 딸과 함께 갔다. 워낙 유럽의 아티스트와 건축가들이 남긴 멋진 예술작품들이 있다. 담장에 숨은 풀숲길이 있어서, 요기에게 안내를 받아서 풀숲을 헤치고 들어가서 본 벽화다. 지금은 바뀌었다고 한다. 몰래 아티스트들이 와서 벽화를 그린다.
(사진) 달라이라마가 항상 아힘사(비폭력)를 강조한다. 비폭력이라는 부분을 우리는 사랑과 자비로 번역한다. 옆에 있는 분은 간디의 가까운 친척이다. 이때 행사가 있었을 때, 와서 주목을 받았다. 인도는 성격상 중요 직책에서 남편이 물러나면, 대신할 사람이 생기기 전까지 아내가 대신하는 시스템이 있다. 한 사람뿐 아니라 집안까지 존중하고 동일시하는 정치문화가 있다.
(사진) 이분은 우리나라 BTN에도 이분이 나온 영화가 있었는데, 영화 싯타르타에서 붓다 역을 한 사람이다. 남인도에서 법문이 있는데, 4년 동안 지속이 된다. 그때 영화 홍보차 오셨을 때, 사인을 손에 해달라고 손을 내민다. 난리가 났다. 싯다르타라는 영화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태국 등 불교 국가로 불교 채널에서 방송이 되고 있는 걸로 안다.
(사진) 법회 참석할 때, 저는 카메라 가방을 메고, 옆에 꿀리라고 해서 짐을 날라주는 분에게 돈을 드리고 짐을 맡긴다. 얼마를 드리겠다고 계약을 하고 짐을 날라준다.
(사진) 라다크에서 법회가 있었을 때의 사진인데, 다른 사진에 비해서 퀄리티가 좋은 이유가, 달력으로 제공해달라는 부탁이 있어서 화질이 좋다. 법회 참석하는 승려분의 가방을 보자. 얼마나 먼 길을 지팡이를 짚고 왔을까. 발걸음이 힘차다. 달라이라마의 법회를 가기 위해서, 노란색 긴 헝겊에 쌓인 것은 분명 경전이나 논서다. 법회장으로 향하는 뒷모습이다.
(사진) 라다크의 전통의상을 입은 남녀들이다. 많은 파라솔들이 보인다. 워낙 햇빛이 강하다. 멀리 노란색 지붕이 보이는 곳이 한쪽은 달라이라마의 숙소이고, 한쪽은 법회를 하는 곳이다. 바깥에 많은 군중들이 운집했다.
(사진) 달라이라마에게 가피(축복)를 받기 위해서 사원이든, 본인이 머무는 공간에 모실 불상을 가지고 나온다. 법회가 거의 마무리 될 때 보여지는 풍경이다.
(사진) 칼라차크라 법회에서는 샌드(Sand) 만다라를 조성한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세계적인 평화를 기원한다. 만다라에 들어가기 직전에 첫 모래가루를 뿌려 넣는 모습이다. 이것으로 의식이 시작된다.
(사진) 하루하루 지날수록 만다라가 완성된다. 주변에서는 기도를 한다.
(사진) 티벳 불교와 연관된 춤과 의식이다.
(사진) 티벳불교에는 신탁승이라는 흥미로운 제도가 있다. 망명하기로 결정을 하고, 언제 떠날지를 고심하면서, 신탁승에서 기일을 묻는다. 언제 떠나야 인도에 무사하게 도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티벳에 여러 신탁승이 있는데, 가장 저명한 꾸뗀 라라고 불리는 스님이다. 한국에도 여러 번 다녀가셨다.
(사진) 각종 의식이 펼쳐진다. 달라이라마가 만다라 위에 올라가서 의식을 한다. 가끔 법문 중에 말씀하던 부분이 앞으로의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꿈에 이런 모습이 자주 나왔다고, 만다라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본다고 한다. 의식에서 힌트를 얻는 것 같기도 하다.
(사진) 법문 중의 달라이라마의 모습이다.
(사진) 쉽게 보기 어려운 평소의 달라이라마의 모습이다.
(사진) 다람살라의 아침 모습, 일출 풍경이다.(정말 멋지네요^^)
(사진) 석양 풍경이다.
(사진) 법회가 있으면 사람들이 줄을 선다.
(사진) 아침부터 대중들이 공양할 빵을 운력하는 비구니 스님들이다.
(사진,사진) 가피를 받을 물건들. 가피는 블레싱(Blessing)이다. 달라이라마의 손길을 닿은 것만으로도 신앙심에서 힘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염주나 불상 등을 가져온다. 말려 있는 빨간 족자는 탱화(티벳어로는 탕카)다. 집에 가져와서, 법회장에서 느꼈던 마음가짐을 리마인드하려고 활용한다.
(사진) 태국에서 전 미스태국 출신분들과 연예인 우디의 기획사 분들이 오셨다. 공항 안내방송에 출연하기도 하고, 매우 적극적으로 티벳불자들과 함께 참석하는 분이다.
(사진) 역시 비가 오는 사진이다. 밖에서 달라이라마를 기다리는 대중들이다.
(사진) 취재 열기가 대단하다. 대중 앞에 달라이라마가 선 모습이다.
(사진) 제가 워낙 오래 있다 보니까, 제가 사진을 찍으면 티벳 분들이 봐주신다.
(사진) 법석에 올라서 대중에게 인사를 나누는 달라이라마의 모습이다. 연세가 있으셔서, 오전 9시에 시작해서 11시 정도에 끝나는 1차례 법회만 한다. 85세이시다. 예전에는 오전과 오후에 법회를 했다.
(사진) 대중들이 주는 선물도 받고, 옆에 경찰들이 보호를 한다.
(사진) 한 스님이 손끝이라도 달라이라마와 닿아볼까 하고 손을 뻗는데, 특수경찰에게 제지를 당했다.
(사진) 법회 시간에 대중공양으로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담긴 밀크티나 버터차를 나눠준다.
(사진) 빵도 같이 나온다. 그리고 필수품이 FM라디오다. 전세계 다양한 언어로 번역이 된다. 개인 지참물이다.
(사진) 태국분들이 다람살라에 태국 절을 지으면서, 다른 나라에서 올 때 같이 참여한다. 인사를 이마와 이마를 맞대면서 인사를 한다. 20년 가까이 한국 법회를 주관하는 석천사의 진옥스님이다.
(사진) 가까이서 찍은 달라이라마의 모습이다.
(사진) 법회 때 달라이라마 스님의 옆 좌석으로 높으신 분들이 앉아 있다. 법회에 주최하거나 연관된 분들이 있다.
(사진) 달라이라마의 웃으시는 모습이다.
(사진) 법회에 갈 때 매우 간소하다. 박스 종이를 들고, 기온 차이가 있을지 몰라서 숄을 하나 챙기고, 바랑에는 버터차를 위한 컵이나, 교재 등이 있겠다.
(사진) 아침에 보면 인도 출가승려들이 탁발 공양을 줄 서서 한다.
(사진) 다람살라 법회장의 공양간이다. 제가 유일한 장비를 유일하게 풀고 차 한 잔 얻어 마시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할아버지가 만드시는 밀크티는 공양간에서 일하는 분들만을 위한 밀크티라서 좀 더 진하다. 제가 가면 불을 켜서 따뜻하게 주신다.
(사진) 인도 가지다. 공양간에서 다같이 다듬고 있다.
(사진)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 나머지 공부를 하는 스님들. 법회장의 풍경이다.
(사진) 어디에서 오셨을까. 다람살라에 계시는 분은 아니다. 굉장히 유랑한 분 같다.
(사진) 링 린포체다. 한국에 와서 화제가 되었다
(사진) 간덴 트뤼빠 린포체다.
(사진) 달라이라마의 서양인 주치의다.
(사진) 제춘 빼마 라는 티벳 칠드런 빌리지의 설립자이고, 달라이라마의 여동생이다. 영화에서 달라이라마의 어머니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사진) (엄청 큰) 국을 끓이는 그릇이다.
(사진) 스님들이 대중에게 빵을 나눠준다.
(사진) 향을 사르는 모습이다. 법회가 열렸을 때, 법회와 주관할 때, 달라이라마의 앞길을 이렇게 열어준다.
(사진) 먼 곳에서 오신 분들이다. 티벳 본토에서 오신 분들은 사진 촬영에 민감하다.
(사진) 남은 방울 하나까지 짜이를 마시는 할아버지다.
(사진) 열심히 촬영해주시는 기사님이다. 챙겨주는 부분들이 많다. 한국에서 오시는 미디어 분이다.
(사진) 여러 나라에서 오시지만, 어떻게 하면 달라이라마를 가까이서 볼까가 경쟁이다. 저 책에 결국 사인을 받았다.
(사진) 법회장의 분위기다.
(사진) 이스라엘에서 온 분들이다. 굉장히 자유로워 보인다. 법회용 좌석이 아니지만 2층에 공간이 있어서 앉아 있다.
(사진) 신탁으로 유명한 분이다. 제춘 빼마 라.
(사진) 법당에 제공될 밀크티를 주전자에 담는 공양간 풍경이다.
(사진) 이제는 공양간에 아무도 못 들어간다. 혹시라도 누가 독극물을 풀까봐, 매우 삼엄하게 통제한다.
(사진) 한국에서 오신 촬영기사분과 제가 나온 사진이다.
(사진) 개인 컵을 가져와서 법회 중에 나눠주는 짜이를 마신다.
(사진) 아이와 함께 오신 엄마다. 블레싱을 받아간다.
(사진) 네팔에서 오신 분과 만난다. 이제 7시가 넘은 시각인데, 새벽에 3시반 정도에 일어나신다. 공식 일정을 거의 7시부터 시작한다.
(사진) 네팔에서 공수한 매우 귀한 만다라다. 제작기간이 거의 2년이 걸린 탱화에 블레싱하기 위해 펴고 있다.
(사진) 달라이라마가 빨간 양말을 신고 있다. 5~6년 전에 매우 많은 양의 양말을 공수해서 나눠가졌다. 한국에서 빨간양말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누가 특별주문을 하신 것 같다.
(사진) 달라이라마의 손이다.
(사진) 법회장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달리아라마 방한추진위원회의 위원장인 금강스님이 계신다.
(사진) 가피라고 해서, 대중들이 올린 물건에 숨결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원래 촬영이 허락이 안 되는 구역이다.
(사진) 사람들이 달라이라마를 취재하려고 부른다.
(사진) 열심히 공부하는 한국 스님들이 많이 계신다.
(사진) 아들과 함께 온 한국 여자분이다.
(사진) 오랫동안 한국인 법회를 통역하며 현지에서 공부도 하고 있는 통역가 양지애 님이다.
(사진) 진옥스님과 상좌 범국스님으로, 상좌 스님은 저와 동국대 대학원 동기셨는데 위암 투병을 하시다 입적을 하셨다.
(사진) 남인도에서 한국 선방을 운영하는 열성 학인이신 강봉스님이시다.
(사진) 태국, 대만분들 같은데, 굉장히 신심이 두터운 모습이다.
(사진) 현지에서 공부하고 계신 (한국) 스님이다.
(사진) 법회가 끝나고 단체 촬영을 할 때 난리가 난다. 비서진들이 인원통제를 하고, 몇 만명이 모이는 수준이라서, 우리가 보는 카메라 뒤편이 모습이 이렇다.
(사진) 얼마 전 작고하신 아마아데 님이다. 중국에서 넘어와서 티벳 상황을 알리는 일들을 하셨다. 92세이다. 호주에서 망명을 받아주겠다고 했지만, 다람살라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사진) 달라이라마의 모습이다. 제가 다람살라에 왜 있었는지 상기시켜주는 사진이다.
(유혜현) 여러분 혹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알려달라. 사진과 에피소드를 많이 얘기해주셨는데, 다람살라로 떠나신 계기가 궁금하다. 타지에서 10년간 생활하시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머물렀던 이유가 궁금하다.
(가연숙) 다람살라로 갈 지 6개월을 고민했다. 가게 된 이유는 우선 대학원에서 응용불교 석사를 공부하고, 불교언론사에서 문화담당 기자를 하고, 그 전에도 저는 자기 연민에 관한 창작활동을 해왔다. 어떻게 해소했나 보면 영화를 만드는 쪽으로 참여했다. 상업영화의 연출과 미술을 담당했는데,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영상으로 표현하면서 그 해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그 해답을 찾을 수 없었는데, 전공과 관련된 인연으로 신문사로 갔는데, 한국에서 저에 대한 느낌은 가연숙이라는 이름이 부모님이 지어주셨고, 사람들이 불러줘도 어색했다. 내가 이름에 답하고 행동하고, 내가 가연숙이라고 하지만, 이 이름이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근원적인 것, 종교적으로 심취는 안 했지만, 설치미술, 백남준 교수님이 계실 때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대학로의 공연을 촬영하며 돈을 모으기도 했다.
저는 예술을 접목하며 살았고, 한국에서 자기 연민이라는 것이 한국에서 풀리지가 않았다. 나이 서른에 고민이 계속 되었고, 출가를 생각하다가, 비구니 스님을 만나서, 영국의 행사에 다녀올 시점이었는데, 스님이 저를 상좌로 삼고 싶다고 하셨다. 영국에 다녀와서 미얀마에 수행을 하러 가자고 했다. 그런데 영국에 다녀오며 마음이 변했다. 재가자로 할 수 있는 일을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인도에 갔고, 한국인 법회를 주관한 진옥스님을 만나서 다람살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2009년 5월에 먼저 가게 되면서,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토해내는 병, 말라리아일 수도 있고, 몇 걸음만 걸어도 해머로 머리를 찍는 것 같은 아픔이 있었고, 한국으로 긴급히 돌아오고 그때 치료를 받으면서 든 생각이 다시 다람살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람살라에서 제가 본 것은 세계사에 대한 재해석이었다. 제가 교육받았더 부분의 오류들 제가 배운 것이 완벽하지 않았던 것이다. 1950년대는 격변의 시기였고, 미국의 도움으로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성장을 했는데, 티벳은 그 당시 매우 위태로웠다. 그래서 1959년에 인도로 달라이라마가 망명을 했는데, 세계는 왜 티벳을 이렇게 방관하고, 한국에는 원조를 했을까. 전체적인 시스템에 거부하려는 느낌도 들었다. 모두가 한 곳을 볼 때, 저는 다른 측면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다람살라에서 할 일이 있다면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짐을 꾸렸다. 이게 6개월이 걸렸다. 다람살라에 물들어서, 제 마음의 고향에 온 것처럼 느낀 곳이었다. 저를 많이 변화시켜주었다. 인성적으로나 마음씀으로나, 오히려 배운 것이 많은 곳이 다람살라다.
Q) 10년을 타지에서 살며 깨달은 점은 무엇인가요?
A) 주변 분들이 그런 말을 한다. 저의 미션이었다고 한다. 저는 업무적으로 달라이라마 가까이 갈 수 있었지만, 딸의 이름을 받으려고 가는데 공양금을 올려야 하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어봤는데, 남편이 당신이 이미 다람살라를 위해서 살고 있으니 충분하다고 했다. 진심이었고, 한국에서보다 부지런히 살았고, 한국인이지만 다람살라 안에서는 제가 티벳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생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10년이 지났다.
Q)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A)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하신다. 힘들다, 힘들다. 사실 힘들다. 삶은 힘들다. 괴롭고 고통스럽다. 그런데 그런 부분들이 사실은 뭐랄까, 본인이 힘들다는 늪에 빠져서 그 늪을 조성하는 점을 아셨으면 좋겠다. 벌떡 일어나서, 내가 정신차려야지 해야한다. 힘들다고 하면 그 힘들다는 감정에 몰입되어서 놓치는 것들이 많아진다. 본인의 정체성과 가치를 잃는다. 내가 휴식이 필요할 정도로 힘들다면 말 그대로 쉬면 된다. 힘들어서 쉬어야 돼. 힘들어, 죽겠다고 혼자 끙끙대면 더 힘들어진다. 차라리 말을 하자. 모든 문제의 과정이나 출발점이 대화의 부재로 일어나는 오해가 많다. 상대방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는데, 내가 잘못 해석하는 부분이 많다. 제가 우려하는 점도 문자 메시지에 감정이 들어 있지 않아서 곡해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굉장히 조심스럽다. 시대가, 우리나라가 그런 경우가 많은 듯하다.
홍콩에서 열린 사캬디타 국제대회에서 룸메 분이 먼저 귀국하시고 홀로 홍콩대 앞 쌀국수 집에서 끼니를 때울 때, 캘리포니아에서 온 비즈니스맨이 옆에 앉았다. 그분은 비즈니스 관계로 오셨고, 저는 사진을 찍기 위해 왔다. 얘기를 하다보니, 캘리포니아에 히피문화가 강한 곳인데, 달라이라마가 당신의 행복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다. 달라이라마가 법문을 하시고 길을 보여주시지만, 그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 법문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하지만, 그게 내 삶을 통째로 걸고 할 수 있는가, 혹은 나는 달라이라마의 말을 듣고 나의 삶에 적용하고, 사람들과 연대하고, 주변부터 달라지게 할 수 있는데 두 번째가 더 유니크하다고 본다. 달라이라마도 강조한 말이다. 이게 내 마음과 머리로 말씀의 요지가 이거구나, 제 것으로 체화시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위즈덤 2.0의 앞으로의 행보도 그런 쪽이라고 본다. 실천과 액션이다. 성인들의 말씀은 선지식의 말씀을 또 인용하는데 진리라는 것은 ‘모든 변화하는 것들의 뼈대’와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뼈대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불교의 뼈대는 4성제로 시작한다. 인생은 괴롭다, 해결할 길은 8가지 바른 길에 있다. 사실 나는 괴롭다, 우울하다, 누구보다 불행하다고 했는데, 그것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해결할 방법을 가르치는 한 분이 달라이라마이고, 저는 다람살라에서 지난 10년을 지냈다.
Q)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반복하는 습관이 있으신지?
A) 게쉬 랑리탕바 스님의 글이 있다. 불교와 상관 없이 비종교인을 포함해서, 해외 법문을 가시면, 좀 여유로운 시간을 내서 설명해주시는 수심8훈(마음을 다스리는 8가지 게송)이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여덟가지 게송 by 게쉬 랑리탕바
1. 생명 가진 모든 존재들,
여의주(소원을 이루어주는 보석)보다 귀하지만
무한한 시간 동안 괴로움에 물들었으니
이 안타까운 생명들의 진정한 행복 위해
완전한 깨달음 이루려는 결심으로
매 순간 변함없이 이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2.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
제 자신을 가장 낮은 자리에 두고
가장 미숙한 존재로 여기며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다른 이들을 더 나은 존재로,
더 성숙한 존재로 받들게 하소서
3. 모든 행동들 속에서 마음을 온전히 살펴
온갖 거친 혐오와 괴로움, 모든 미세한 번민과 고뇌,
그리고 그 원인들이 일어나면 그 즉시 충동에 이끌린 조작심이
제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험에 빠지게 함을 알아
당당히 오직 음미하는 무조작심 속에서 휴식하게 하소서
4. 누군가 시기심과 이기심, 또는 어리석음으로
저를 욕하고 비난하며 험담을 퍼뜨리고
부당하고 차갑고 혐오스럽게 대하여도
모든 패배와 손실, 해로움은 거리낌없이 제게 주시고
모든 승리와 이익, 이로움은 미련 없이 이들에게 주소서
5. 강한 부정적 성향과 고통에 억눌려
불쾌한 성격을 가지게 된 이들을 보거나 만나게 되면
마치 찾기 어려운 귀중한 보물을 발견한 듯이,
고귀한 스승과 은혜로운 오랜 친구의 방문을 환영하듯이,
온전히 열린 가슴으로 이들을 반겨 맞이하게 하소서
6. 정성 들여 우애를 쌓으며 행복하길 기도하였던 이들이
낯빛을 바꾸어 제게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를 주거나
심지어 몸과 마음에 가혹한 학대를 가할지라도
변함없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이들이
나쁜 까르마(업)를 소멸시켜주는 고귀한 스승임을 알게 하소서
7. 시작 없는 때로부터 저의 온갖 악행에도 불구하고
한량없는 은혜 베풀어 주신 저의 모든 어머니들께
직간접으로 이익과 즐거움 다함 없이 지혜롭게 드리고
어머니들의 모든 상처와 고통은 남김없이
고요하고 은밀히 제게 주소서
8. 이익 손실, 명예 악명, 칭송 비난, 즐거움 괴로움,
이 여덟 가지 세속적 관심사의 오염에 물들지 않게 하시고
모든 것이 실체 없는 환상 임을 깨달아
장애 속에서 휴식하고 고통 속에서 산보하듯
집착 없이 모든 속박에서 자유롭게 하소서
요약하면, 첫째, 모든 생명들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라는 건 나의 진심을 모두 할애해서, 나와 다름없이 존귀한 존재로 상대를 대하는 것이다. 둘째,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만나더라도, 내 자신을 누구보다 부족하고 미숙하게 보라는 것은 갑질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셋째, 내 마음에 번뇌에 대한 조작심이 일어나면 나와 남을 해치니 조작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는 것이다. 넷째, 모든 해로움을 저에게 달라는 것은 결국 연민에 관한 이야기다. 다섯째, 열린 가슴으로 부정적인 성향의 사람들을 대하자. 여섯째 내가 도와주고 큰 기대를 걸었던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치더라도, 그를 내가 성장하도록 일깨워주는 스승(선지식)이라고 생각하자. 일곱째, 나의 안락을 모든 어머니들에게 드리고, 어머니들의 고통을 내가 받게 하소서. 여덟째, 세간 8풍(8가지 유혹과 오염) 에 물들지 않게 하고, 모든 것을 꿈과 같이 알고 자유롭게 해달라는 것이다.
불교가 어려워서 접근을 거리감을 두는 분들이 있는데, 윤리적으로 사회에서 더 연결되어서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 시처럼 쓰인 글이다. 위즈덤 2.0 코리아 10월 16~17일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한다.(끝)